Q 해당 문구를 선정한 이유는?


A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일상 속의 많은 부분을 국가에서 통제하고 개인이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계획했던 일이 미뤄지고 취소되는 일이 빈번하다. 사회에서 겪는 대부분의 선택에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다수의 선택이 반려되고 망설여지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것이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코로나 사태가 진행될수록, 그리고 지금도 이 문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Q 해당 기호 활자를 선정한 이유는? 1번 작품 문구와의 연결성이 있는가?


A 문구의 의미와 상응하는 기호를 선정하고 싶었지만 적합한 기호가 없었다. 대신 ‘계속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를 생각하며 오른쪽 방향을 지시하는 화살표를 골랐다. 오히려 문구 다음에 올 의미를 기호가 대체한다고 할 수 있다.


고경아의 기호활자


Q 해당 문구와 레터링(혹은 서체)을 조합했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A 소설 〈토지〉 속 인물 길상에 영감을 받아 제작 중인 ‘길상체’는 단단하고 진중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해당 문구의 의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구의 의미가 강조되고 또렷해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 3가지 굵기로 작업했는데, 완성하고 나니 역시 본래 길상체의 모습인 가장 굵은 서체가 의미를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절하다고 느꼈다. 획의 무게감에 따라 서체가 가진 인상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고, 이를 다른 분들과도 공유할 수 있어 좋다.


‘길상체’는 소설 『토지』 속 인물 ‘길상’에게 영감을 받아 시작한 서체로, 뭉툭한 획의 형태와 네모꼴에 가까운 꽉 찬 공간이 특징이다. 좁은 속공간과 맞닿은 획의 모습이 무게감을 더해 고전적이고 진중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분명해진다”는 의미를 길상체의 세 가지 굵기 변화로 표현하였다.


Q 해당 작업(레터링, 서체 디자인)중 마주한 문제 상황과 그 해결 방법은?


A ‘길상체’는 2018년 8월부터 작업 중인 서체로, 현재 한글 1,000자 정도를 그린 상태라 전시 작업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그래서 작업 기간동안 굵기 2종을 추가하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두꺼운 서체는 작업되어 있으니, 획을 덜어내는 것은 금방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8글자씩 2종의 굵기를 추가하고 본래의 길상체 모습을 조금씩 수정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물리적인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고 끈기있게 수정 사항을 살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Q 사회가 잠시 멀어진 지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그동안 인쇄물 기반의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주로 해왔고, 자연스럽게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업물을 실물로 많이 접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많은 것이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오프라인 경험을 장담할 수 없으니 다른 디자이너의 작업물을 접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작업물을 보여주고 판매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변화로는 이직 시기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시기가 겹쳐서 이커머스 업계로 인연이 닿기도 했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더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고경아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인쇄물 기반의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고 최근 인하우스 브랜딩디자이너로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다. 2018년 8월부터 개인 작업으로 ‘길상체’를 그리고 있다. 2019년 전시 히읗 7회 〈글-하다〉에서 선보인 길상체는 상용화를 목표로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